조숙진은 버려진 나무와 낡은 액자, 이미 쓰임을 다한 사물을 다시 세웁니다. 표면의 흠집이나 못 자국을 지우고 새것처럼 만들기보다, 누군가의 곁을 지나온 시간이 그대로 보이게 둡니다. 그렇게 모인 조각들은 벽에 기대고 천장에서 내려오며 때로는 건물과 풍경 속으로 번집니다. 작가는 사물을 구해 주는 사람의 자리에 서기보다,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고 더 오래 남을 물질 앞에서 자신의 자리를 낮춥니다. 조숙진의 작업에서 조각은 완성된 덩어리가 아니라 사물과 장소, 사람의 기억이 잠시 만나는 자리입니다.
작업을 이해하는 세 가지 단서
- 나무가 기억한 시간젊은 시절 비싼 캔버스 대신 합판을 택한 경험은 버려진 나무를 작업의 중심으로 이끌었습니다. 갈라진 결, 벗겨진 칠, 잘린 모서리는 감춰야 할 흠이 아니라 사물이 지나온 삶의 흔적입니다. 무엇을 새로 만들었는지보다 이미 있던 시간이 어떻게 다시 드러나는지 살펴보세요.
- 비어 있어 더 선명한 자리화면이 빠진 액자와 문짝, 쓰임을 잃은 가구는 부재를 감추지 않습니다. 안이 비어 있을수록 그곳에 있었을 얼굴과 풍경, 몸의 크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작품의 덩어리만 보지 말고 틈과 그림자, 사물 사이로 열린 공간까지 함께 보면 보이지 않는 존재가 천천히 가까워집니다.
- 장소와 함께 완성되는 일조숙진은 거리와 해변에서 재료를 모으고, 여러 지역의 사람들과 장소특정적 작업을 이어 왔습니다. 폐어구처럼 자연의 순환을 거스른 물질도 전시장 안의 재료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이 흘러온 바다와 수집한 사람, 다시 놓인 장소를 함께 볼 때 작품의 시간은 한 사람의 세계관을 넘어 확장합니다.
전시에서 읽기 시작
《지나가는 자리》에서는 먼저 나무의 표면을 가까이 살펴보세요. 못이 박혔던 자리와 잘린 단면, 남아 있는 색을 따라가면 사물이 작품이 되기 전의 시간이 보입니다. 다음에는 한 걸음 물러나 빈 액자와 사물 사이의 간격, 벽과 바닥에 생긴 그림자를 바라보세요. 마지막으로 야외의 〈삶의 색채-모여라 꽃!〉 앞에서는 화려한 색에만 머물지 말고, 그 재료가 바다에서 어디까지 흘러왔는지 떠올려 보세요. 버려진 물질과 아름다운 장면이 동시에 놓일 때 작품이 품은 시간이 더 깊어집니다.
여운을 남겨둘 질문
한때 버려졌던 사물은 삶이 끝난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보지 못했던 시간이 그때부터 드러나는 것일까요?
지금 연결된 전시
- 조숙진: 지나가는 자리2026-07-29 — 2026-11-15
Official sources
공식 자료 더 보기
기관 또는 작가가 공개한 원문에서 작품과 전시 정보를 이어서 확인하세요.
- 서울시립미술관 — 《조숙진: 지나가는 자리》 전시·작가 소개
- 조숙진 작가 공식 웹사이트 — 약력과 작업 이력
- Atlantic Center for the Arts — Sook Jin Jo
최종 확인일 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