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의 《조숙진: 지나가는 자리》는 조숙진이 40여 년 동안 나무와 사물, 장소를 대하며 이어 온 작업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초기 합판 작업부터 버려진 액자와 가구를 엮은 조각, 사진과 드로잉, 장소특정적 설치와 최근 작업까지 100여 점이 펼쳐집니다. 제목의 ‘지나가는 자리’는 모든 존재가 결국 사라진다는 결론보다, 우리가 세계를 잠시 빌려 머물며 서로에게 흔적을 건네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이 전시를 이렇게 보면 좋아요
처음에는 작품의 형태보다 재료가 지나온 시간을 살펴보세요. 초기의 합판에는 캔버스를 대신해 택한 재료가 한 작가의 언어로 자라나는 과정이 담겨 있고, 이후의 낡은 나무와 빈 액자에는 이전 사용자의 기척이 남아 있습니다. 표면의 흠집과 잘린 모서리, 비어 있는 가운데를 차례로 보면 조각이 사물을 덮어 새롭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던 시간을 다시 보이게 하는 일로 다가옵니다.
야외의 〈삶의 색채-모여라 꽃!〉은 멀리서 보면 색색의 꽃이 모인 장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는 굴업도 해변에 밀려온 폐어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름다운 색과 좀처럼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시간이 한곳에 중첩됩니다. 어느 한쪽만 택해 해석하기보다 생명력과 불편함을 함께 바라보세요. 그러면 버려진 물질을 다시 쓰는 일을 넘어, 인간이 자연에 남긴 시간이 어떤 지형을 만드는지까지 전시의 질문이 넓어집니다.
ARTIST DB · 01
이 전시에서 만나는 작가
서로 다른 작업의 질문을 먼저 읽고, 전시장에서는 한 작가부터 천천히 시작해 보세요.